[홍경한의 시시일각] 폐기되고 훼손되고…절실한 '작가 미술품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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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폐기되고 훼손되고…절실한 '작가 미술품 보관시설'

최종수정 : 2016-12-18 11:06:19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작가로서의 삶은 가시밭길을 걷는 그것과 다름 아니다. 본래 창작이란 것 자체가 고통과 번민을 수반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운명처럼 외면하지 못한다. 허나 경제적 궁핍함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이 덧대어질수록 예술가로서의 여정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재차 자각하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젊은 작가들의 경우 작업공간과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130여개의 레지던시 및 창작공간이 있고, 다양한 공모와 프로젝트, 전시들이 '청년작가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또한 엄혹한 무한경쟁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으나 어쨌든 간신히 숨 쉴 수 있는 틈은 있으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중견작가들은 그 어느 곳 하나 마땅히 기댈 데가 없다. 화력이 높던 낮던 소위 잘나가는 작가가 아니라면 전시 기회가 협소한 현상은 어차피 오십보백보이고, 창작스튜디오에 지원하고 싶어도 후배들 눈치부터 보인다. 지원금 수혜를 받기 위한 면접 자리에선 '이 나이에 뭐 했나' 싶은 자괴감부터 밀려오며, 40년 이상 그림만 그린 이들조차 연수입이 534만원에 그치는 상황이니 빈곤함 측면에서 또한 나을 게 없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많은 부분에서 내외적 소외감을 느낀다는 게 맞다.

그런데 눈에 잘 띄지는 않으나 그 어떤 것 못지않게 작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고민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작품보관'에 대한 문제다. 이는 신진 및 원로 할 것 없이 세대를 관통하는 공통의 근심으로, 관념 차원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여실히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찰의 필요성이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만난 한 원로작가는 "언제 세상과 이별할지 알 수 없는데, 저 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해야 모르겠다."며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름 한국 현대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임에도 "수장고를 갖춘 미술관 기증도 쉽지 않고 자식들에겐 짐이나 될 테니 죽기 전에 태워버려야지 어쩔 수 있나"라는 말을 독백처럼 내뱉었다.

작품보관 문제는 젊은 작가들도 피해가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생활공간과 작업공간, 수장고가 분리되지 않아 창작의 질적 저하에 무방비하다. 운이 좋아 창작공간에 입주했다 손쳐도 1년 남짓 머무르다 옮기는 일을 반복할 때마다 늘어난 작품을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뜻밖의 갈등을 겪는다.

보관시설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는 중견 작가들의 상황도 난처하긴 매한가지다. 어려운 살림에 간신히 작업실을 구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전전긍긍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작품 보관용 창고 등을 얻으려 해도 만만치 않은 비용에 이도저도 못하기 일쑤다. 체계화된 습도, 온도, 단열, 내화, 수납 등을 생각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이쯤 되면 다작(多作)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작가들의 자조는 수긍할 만하다. 공공의 자산인 미술품이 소리 없이 폐기되거나 훼손되는 환경을 정부가 개선해줘야 한다는 주문 역시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작가 미술품 보관시설'에 대한 작가들의 절실함을 알고 있을까.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2014)에 작가 작품 보관시설 조성을 포함시킨 것을 보면 알긴 아는 듯싶다. 하지만 포퓰리즘에 입각한 주먹구구식 정책들이 그러하듯 계획 종료 시점을 코앞에 둔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실현성은 찾기 힘들다.

실현은커녕 별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각 지역문화재단을 '작가 미술품 보관시설' 운영의 주체로 삼아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보관, 출납하며 차후 기증과 소장을 구분해 용도를 명료하게 하거나 미술은행 역할을 맡아 작가 작고 시 유족들에게 임대수익을 돌려주는 방식 등의 적절한 대안이 있지만 논의는 이뤄지지 있지 않다. 순수 보관 역시 전국 유휴공간 및 국공립대학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고민할 만하고, 경우에 따라선 온라인플랫폼을 구축해 보관 작품을 판매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말만 꺼내놓고 지지부진한 이유는 '예산'이라는 장벽 탓이 크다. 하지만 최순실 연루 예산의 절반만 써도 싹 해결될 일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결국 의지의 문제지 예산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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