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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수능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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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집 근처 산 풍경이 무척 수척해졌다. 추위가 성급하게 찾아와서인가. 약수터로 가는 오솔길. 색 바랜 낙엽들이 처연히 누워 있다. 정권말기적 게이트증후군이 도지지 않았더라면 산 풍경은 그렇게 스산하게 엄습해오지 않았을 것이다. 산안개가 가물거려서인가. 오가는 객들의 표정이 왠지 우중충하다. 내 표정도 저런가, 입 꼬리를 애써 올려보지만 버겁다. 그래서일까. 언뜻언뜻 얼굴을 도닥여 주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정겹다.

초겨울의 약수터는 입김을 연신 뿜어낸다. 초입에 직립한 식수적합 푯말이 믿음직하다. 필자는 그 판정을 신뢰한다. 그렇게 마시니 약수는 보약이 된다. 약수터에는 물만 있는 게 아니다. 민심도 샘솟는다. 정객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이유다. 한 아낙네의 볼멘소리가 정적을 깬다. 나라가 시끄러운데 정신 사나워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이란다. 수험생 자식이 혹여 한 치의 실수라도 할세라 노파심에 내뱉은 넋두리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수능시험. 순간 신사임당이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훌륭한 어머니의 표상, 아니 그 표상의 끝이 7명의 자녀를 영재로 길러낸 그녀의 맞춤식 교육법에 닿았기 때문일 게다. 자녀 중 율곡 이이의 경우 시쳇말로 '공부의 달인'이었다. 문과 급제의 필수 코스였던 9단계 시험에서 모두 수석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9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가히 수험생의 스타다.

수험생 율곡과 학부모 신사임당. 두 모자가 오늘의 세상 속으로 환생한다면? 그래서 입시지옥과 맞닥뜨리면? 역사책 갈피에 칩거하는 두 모자를 불러내 저 치열한 입시 전투에 투입시킨다는 건 가혹하기 짝이 없긴 해도 말이다. 470년의 세월을 성큼 뛰어넘어 합류한 입시대열. 당장은 도처에 널린 신사임당 아바타에 눈을 희번덕거릴 거다. 신사임당 자신도 '매니저 엄마'였으니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다. 필승전략을 세우는 것도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서는 명문대학을 가기 힘든 입시구조 대목에선 갸우뚱할 거다. 학원?과목별 스승이 많게는 십수명. 초등학교 입학 이전부터 그렇게 해왔다니 스승이라곤 어머니가 전부였던 율곡이 이런 과부하 수능레이스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율곡은 수험생활 틈틈이 감성을 키우기 위해 거문고를 뜯고, 피리를 불고, 그림도 그렸다. 이런 감성 예술이 가계 부채를 늘리는 수시전략 주요 스펙으로 변질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다. '돈도 실력'이라는 궤변은 단 한 푼의 사교육비를 들인 적이 없는 학부모 신사임당의 폐부를 후빌 거다. 입학 특혜 논란 속에 수능을 치르는 율곡은 좌절감에 빠질 것이다. 도덕과 곧은 품성을 금과옥조로 여겨온 율곡으로서는 일탈할 지도 모를 일이다.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인재를 뽑기 위해 도입한 과거제와는 영 딴 판이라면서. 상상해보라. 저 총명한 공부의 달인 율곡이 오늘의 입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웅크린 모습을 말이다.

신사임당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갈까. 이게 아닌데. 신사임당은 아들을 일으켜 세워 등을 도닥거려 줄 것이다. 그 험하고 먼 수능레이스를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면서. 그리고 이렇게 훈도할 것이다. 출발선이 달라도, 학습이 늦어도 꿈은 꿈꾸는 자에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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