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정 : 2016-10-13 15:31:50

[브라보 솔로라이프-망원시장을 가다 ①] 젠트리피케이션이 만들어낸 솔로천국 '망리단길'

▲ 망원시장 입구 /송병형 기자

최근 1년사이 서울에서 새로운 젊음의 거리이자 싱글족의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망리단길'이라고 불리는 마포구 망원시장 인근 거리다.

▲ 망리단길의 문화상품 공방. /송병형 기자

망리단길은 이태원의 경리단길에 빗대 언론에서 만든 말이다. 정확히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망리단길인지는 이곳 토박이들도 모른다. 포은로를 비롯한 곳곳에 로맨스 영화에 나올법한 카페와 공방, 아기자기한 식당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 모든 곳에 대한 통칭이다.

▲ 망리단길에 들어선 카페와 공방들. /송병형 기자

이곳에 부는 문화산업의 열풍은 인근 재래시장인 망원시장까지 산뜻하게 변모시킬 정도다. 망원시장은 시장 내 곳곳에 있는 샛길을 통해 망리단길과 이어진다. 사실상 망원시장과 망리단길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 망리단길의 식당. /송병형 기자

망원시장상인회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부터 망원시장 인근으로 젊은 세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6년 전통시장 인가후 2008년 지붕포장을 씌운 뒤 활기를 띄어가던 시장은 젊은이들의 가세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평일 오후 시장에 가득한 인파에는 시니어 세대부터 2030 세대까지 거의 모든 세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망원시장 내부전경. 시장건물 2층에 원룸이 들어서 있다. /송병형 기자

이 중에는 혼자 장을 보러 나온 싱글족 남녀들도 상당하다. 인근 거리에 가득한 원룸에서 살고 있는 싱글족들이다. 시장 건물 2층에 원룸들이 들어서 있을 정도로 이곳은 싱글족의 보금자리와 같은 곳이다.

▲ 망원시장에서 장보기를 마친 싱글족이 시장 샛길을 통해 망리단길로 향하고 있다. /송병형 기자

망원시장에서는 값싼 생필품을, 망리단길에서는 문화예술을 만끽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싱글족에게는 천국인 셈이다. 이같은 매력이 싱글족들을 불러 모았다. 게다가 월세도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싱글족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좋은 환경이다. 벌써 시장 인근 거주 세대의 47% 가량을 1인가구와 2인가구가 차지한 상태. 시장 부동산에서는 "싱글들의 유입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시장 샛길 입구의 카페. /송병형 기자

하지만 이곳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 망원시장 입구부터 시작되는 카페 거리의 모습. 이 카페는 시민단체 대표인 조영권 씨가 운영하고 있다. /송병형 기자

이곳 카페 중 하나의 주인이자 시민단체 대표이기도 한 조영권(42) 씨는 "망원동이 현재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으로 몰려든 소자본 창업자와 문화예술인들 대부분은 홍대거리 임대료가 오르면서 밀려난 사람들"이라며 "홍대에서 연남동과 상수동으로 밀려났고, 이어 그곳들마저 임대료가 오르자 망원동까지 쫓겨났는데 이제 이곳도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 망원시장 내에서는 고유의 지역문화를 살리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송병형 기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망리단길을 탄생시켰고, 다시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이 될 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 화원을 연상시키는 망리단길의 중화음식점. /송병형 기자

핫플레이스로 알려져 젊은이들이 모여들면 문화의 거리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음식점들이 메우게 된다. 이미 홍대거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조씨는 "이곳이 핫플레이스로 인식되면서 벌써 가게세가 흔들흔들하고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망리단길이라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망리단길이란 말이 망원시장 일대의 고유한 문화는 외면한 채 경리단길의 아류인양 비춰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 임대료가 오르면서 망원시장을 바라보는 조영권씨(오른쪽)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송병형 기자

망원동에는 희우(단비)정이 있다. 유난히 자연재해가 빈번했던 조선 세종 치세, 가뭄이 한창일 때 왕의 친형인 효령대군이 들르자 단비가 내린 일을 기념해 세운 정자다. 이후 성종 때 역시 왕의 형인 월산대군이 정자를 키워 '인근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멀리서 바라본다'는 의미의 망원정으로 개명했다.

조씨는 "망리단길이 아닌 단비골목이나 희우정길, 아니면 그냥 망원동길이 역사성과 함께 이곳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를 끌어내기에 좋은 명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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