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부정(不正)한 사회, 무정(無情)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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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부정(不正)한 사회, 무정(無情)한 사회

최종수정 : 2016-10-06 05:38:48
윤휘종 산업부장
▲ 윤휘종 산업부장

며칠 전 큰 아들과 TV를 보다가 김영란법의 여파로 고급 음식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3만원 이하 식단과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평소에도 사회에 비판적이던 큰 아들이 아니나다를까, 한마디 했다.

"그럼 지금까지 남의 돈으로 밥을 먹었단 얘기야? 그것도 저렇게 비싼 걸?"

"그게 다 회사 일 때문에 그런 거야. 밤낮으로 회사 일 하는데 자기 돈까지 내야겠냐?"

이렇게 논쟁이 시작됐다. 큰 아들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 가운데 부패지수가 높은 이유가 있었다며, 남의 돈으로 밥먹고 술마시느라 나라 꼴이 엉망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 말도 맞지만 반박했다. 법의 취지는 좋은데 지금 당장 죽어나가는 건 중산층이나 서민들이란 게 뉴스에 나오지 않느냐, 앞으로 세상은 잘난 사람들끼리만 뭉쳐다니고 낯선 사람들은 안 만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나올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아들과의 논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차피 결론 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뉴스를 보며 흐지부지 넘어갔다. 하지만 속으론 억울했다. 마치 아버지를 김영란법에 반대하고, 부정부패를 지지하는 사람처럼 생각하지나 않았을까 걱정도 됐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따끈한' 이슈라 여기저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기업들도 외부와의 접촉이 많은 부서에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최종적인 '유죄'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할 사안이라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결국, 법원 판례가 답인데 그러려면 수많은 '전과자'들이 필요하다. 판례가 쌓이려면 그만큼의 누군가가 김영란법 위반으로 기소돼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전과자가 되고 싶어 하겠는가. 그래서 모두들 납작 업드려 눈치만 보고 있다. 특히나 '시범케이스'로 걸릴 경우 법적 제재에 덤으로 망신까지 당할 수 있다. 공무원들과 학교에서도 "우리 애 좀 잘 봐주세요" "우리 학생 취직 좀 시켜주세요" "제가 취업했습니다. 수업에 빠지더라도 학점 좀 잘 주세요" 같은 부탁이 부정청탁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애당초 법 취지는 이런 게 아니었다. '청탁금지를 법으로 금지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연고, 혈연, 학연 등으로 청탁이 이루어지는 부정부패의 시작을 막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며 공직자의 직무수행 공정성을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것이 김영란법의 취지다.

이처럼 법 취지는 청렴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인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5000년간 한반도에서 단일 민족을 유지하며 끈끈하게 이어온 혈연, 지연, 학연을 단칼에 베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연고, 혈연, 학연이 부정부패의 시작이어서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것은 맞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회현상은 "문제가 될 소지의 모든 관계를 당분간 끊자"는 것이다. 열심히 회사 일 하다가 전과자 되기는 싫다는 것이다.

'직무연관성'이란 애매한 용어는 법정에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아예 만남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낯선' 민원인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피하고 있다. 교사들도 학부모들을 안 만나려든다. 오히려 잘 됐다는 반응도 있다. 피곤하게 이사람 저사람 만나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갑'의 위치에 선 사람들은 불리할 게 없게 된다. 인간관계는 사무적으로 바뀌면서 정(情)이 메마를 수도 있다.

된장이 오래 묵다보면 구더기도 생기는 법인데, 구더기가 더럽다고 된장에 살충제를 뿌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의 제도가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김영란법도 몇년 뒤에는 '상식'으로 통용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부작용이 계속 나올까 우려된다. 사회가 변하려다 보면 그런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진짜로 걱정되는 건, 우리가 '부정(不正)한 사회'에서 벗어나려다가 '무정(無情)한 사회'로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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