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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이화여대 본관 점령 46시간의 증언...'감금'인가 '저항'인가

2일 엿새째 농성 중인 이화여대 학생들은 '감금 논란'에 대해 "아니다. 교수들을 감금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평의회 의원들이 학생들이 점거한 본관 안으로 자발적으로 들어왔으며 아픔을 호소할 경우 구조대원을 요청해 병원에 이송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성희롱적 발언·폭언·욕설 등을 했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큰소리·반말·조롱을 일삼은 것은 교수들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지난달 28~30일 사이 있었던 자신들의 행위를 '학생들의 의견을 철저히 묵살하는 학교에 대한 저항'으로 규정했다. 메트로신문은 여러 차례 학생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었지만 보다 구체적인 답변을 얻지는 못했다. 순수성을 담보하기 위해 자발적인 참여 방식을 택한 때문인지 그들은 의사결정에 신중한 모습이었다. 메트로신문은 학교 측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향후 학생들이 구체적인 증언을 제공하면 추가로 보도하기로 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거 점거 농성 엿새째인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졸업생 및 재학생들이 졸업장 반납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7월 28일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교 본관건물 점거 당일 서혁 교무처장은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당시 '미래라이프 사업'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은 이날 오후 2시 미래라이프 사업 관련 평의원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해 본관 점거를 시도했다. 서 처장은 평의원은 아니지만 미래라이프 사업의 책임자로 보충설명을 위해 평의원회 참석을 준비 중이었다. 정오부터 본관에 진입하기 시작한 학생들로 인해 서 처장은 평의회 참석이 힘들다고 판단, 학생들을 피해 교내의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평의원회가 열리는 소회의실에는 이미 7명의 평의원이 있었고 회의가 힘들다는 얘기를 들은 이들은 나가려 했지만 학생들에게 가로막힌다.

평의원 중 한명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학생들은 사업에 반대한다는 각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말했고 이미 확정된 사업에 반대할 권한이 없는 평의원들은 서명하지 못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였다. 이렇게 7명에 대한 감금이 시작됐다. 밤 10시 일부 평의원들이 112와 119에 구조를 요청해 경찰과 소방관이 진입을 시도했지만 이내 물러나야 했다. 200여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뚫을 길이 없었다.

10시 반 서 처장이 점거된 소회의실로 들어가겠다고 학생 측에 알렸다. 평의원을 내보내 달라는 협상을 하기 위해서다. 시위학생들은 2시간의 회의 끝에 자정께 서 처장의 본관 진입을 허락했다. 서 처장과 학생들은 1시간 40분가량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서 처장은 "설명 중간중간 시위학생들의 야유와 조롱이 터져나왔다"고 증언했다. 질의응답을 마치고 새벽 2시께 서 처장은 소회의실로 진입했다. 지친 평의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7명 모두 회의실 의자에 앉아있었으며 50대의 여성 평의원은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 있었다.

서 처장은 학생들과 협상을 시도했다. 2명의 여성 평의원을 내보내 달라는 요구였다. 학생들은 평의원 2명을 내보내는 조건으로 서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서약서에는 ▲교무처장으로써 모든 책임을 진다 ▲29일까지 다른 2명의 평의원을 진입시킨다 ▲이를 어길 시 모든 법적책임을 진다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총학생회장이 직접 작성하고 서 처장과 변호사 출신의 평의원이 서명을 했다. 서명과 함께 자유의지로 서명하는 것이라는 동영상을 녹화해야 했다. 2명은 앰뷸런스로 나가게 되고 4명의 평의원과 서 처장, 그리고 서 처장과 함께 진입한 여자 팀장 등 6명이 남았다.

15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소회의실에는 최대 50여명의 학생들이 들어와 이들의 대화를 녹취하고 있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에 갈 때는 손을 들고 의사를 표해야했다. 한명의 평의원이 화장실을 통해 탈출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화장실을 사용할 때 감시를 받아야 했다. 다른 평의원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의사를 표하자 기저귀를 던져줬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회의실내부 학생은 물론 복도에 서있는 100여명의 학생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화장실 가신답니다"라는 소리가 복도에 퍼졌다. 나중에는 풍물패가 합세해 화장실을 갈 때마다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렸다. 화장실에 앉아 일을 볼 때는 문을 열어뒀다. 탈출을 감시하는 것이다. 좌변기에 앉아 문을 닫으면 바깥에서 "문자 보내나봐?", "다리가 이상한데" 등의 소리가 들려왔다. 서 처장은 "정말 수치스러웠다. 생리현상을 해결함에도 감시를 받아야 하니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서 처장의 항의로 이 후에는 화장실 내부를 감시하는 일은 없었다.

밤이 되자 학생들은 구호를 외치며 책상을 쳤다. 지방의 교육자라고 자처한 이가 클럽음악이 담긴 USB를 가져와 앰프로 재생했다. 학생들은 음악에 맞춰 불을 껐다 켜며 조명을 연출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서 처장은 당시 모습이 나이트클럽과 같았다고 증언한다. 새벽 3시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막던 서 처장은 내보내달라고 크게 항의했다. 학생측은 음악을 끄고 "지금부터 필리버스터 토론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30일 1600여명의 경찰 병력이 6명을 구출하기 위해 본관에 진입을 시도한다. 300여명이 본관에 진입해 여경을 앞세워 복도의 학생들을 밀어내며 통로를 확보했다. 소회의실에 있던 6명이 46시간만에 외부로 나왔다. 서 처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평의원들을 내보내기 위해 자진해서 들어갔지만 나중에는 혼자서라도 도망가고 싶었다"며 "당시 유리병이 보였다. 저 유리병을 깨고 손을 그으면 내보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수십번 했다"고 말했다.

서 처장은 현재 탈진, 고혈압증세, 이명, 신경쇠약 등으로 입원치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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