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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홍경한의 시시일각] 국민을 바보로 만든 '입'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최근 미술계를 둘러싼 온갖 사건과 의혹이 이어지면서 대중들의 의구심도 부쩍 늘었다. 많은 이들은 조영남 대작(代作) 논란을 가리켜 "대신 그린 그림에 작가는 사인만 하는 게 정말 미술계 관행이냐"고 물었고,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쟁과 이우환 위작 의혹이 불거졌을 땐 (미술계에)위작과 대작이 판치는 게 사실인지 되묻는 이들도 꽤 됐다.

그때마다 필자는 "미술계하고는 거의 상관없는 자들에 국한된 예"임을 분명히 했다. 대다수 미술인과는 거리가 먼 현상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미술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몇몇의 발언을 문제 삼을 땐 보다 긴 호흡과 설명을 필요로 했다.

일례로 조영남 대작 관행을 변호하는 말이 나왔을 당시엔 자의반타의반 거의 해명에 가까운 모양새를 취해야 했다.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예술가의 지위를 누리는 소수"가 어째서 모든 예술의 가치방식을 규정하는 건 아닌지를 길게 진술해야 했으며, 불신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정통회화와 개념미술, 앤디 워홀과 솔르윗, 데미안 허스트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례를 비교제시 하는 등, 이해를 돕기 위한 과정을 지난하게 되풀이하곤 했다.

여기에 동시대미술의 경향과 흐름, 상품과 작품, 결과와 과정, 저작권 문제까지 일일이 쉽게 풀어 공유하는 것 역시 녹록한 건 아니었다. 이 모든 게 그저 주관을 진리라 착각하는 그들의 '입' 덕분이라 치부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입'이 미술계와 국민을 반편이로 만들었다. 바로 한 학원 강사의 엉터리 '조선미술사' 강의였다. 수능 사회탐구 영역 강사인 그는 정치, 경제, 역사를 넘나들며 학문의 탈경계 및 해체(?)를 몸소 실천해 왔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턴 느닷없이 '진짜 그림 보는 법'을 알려준다면서 조선미술사로까지 영역을 넓혔고, 기어코 대형 사고를 쳤다. 잘못된 정보를 사실인 냥 방송에서 고스란히 노출시킨 것이다.

그는 생존 작가의 작품을 조선말기 화가 오원 장승업의 작품이라며 열변을 토했다. 영화 소품용 모작도 오원의 것으로 소개했다. 특히 검산 행차도를 담은 '산궁수진'이나 한유(韓愈)의 시(詩) '투계'를 제화로 한 작품 등, 다양한 산수화와 영모화, 화조도를 남긴 신윤복을 두고 기생 그림이나 그린 풍속화가라고 곡해하더니 급기야 보물 제527호인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대해선 '위작' 의혹을 주장하기도 했다.

멀리만 느껴지던 그림이야기에 답답해하던 이들은 시원시원한 그의 '입'에 열광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들이 바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내뱉은 미술사는 비전공자에 의한 근거 없는 확신에 불과했고 실제와 어긋난 미술사를 새로운 미술사처럼 소개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터무니없던 강의는 미술계에도 엄한 불똥을 튀겼다. "미술계에 얼마나 인재가 없으면 거짓 전문가들이 방송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느냐"는 조롱이 적잖이 쏟아졌던 탓이다.

'입'만 살아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경험부족을 책으로 메꾸되, 궤변을 달변으로 포장해 판다는 것에 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은 참됨이요, 그것에 반하면 무지하다 비웃는다는 점, 항상 가르치려는 자세에 익숙하다는 사실도 또 하나의 공통분모다. 허나 한낱 도랑에 불과한 지식장사치들의 '입'은 가볍다. 바닥이 금방 드러난다. 그럼에도 미술계 안팎에서 발을 빼진 않으며 늘 시끄럽게 배회한다. 그에 비례해 아무 죄 없는 미술계 신뢰도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다.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미술전문지인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월간 '경향아티클'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비평과 강의, 방송과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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