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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소영의 명화 에세이] '상자수집'이 작품이 된 남자ㅡ조셉 코넬(Joseph Cornell)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자의 물건'이라고 하면 화장품, 목걸이, 하이힐 등 다양한 것들이 떠오르는데, '남자의 물건'이라고 하면 딱히 흥미로운 게 없다는 의문의 시작과 함께 그는 '자신만의 물건' 덕분에 행복해하는 열 명의 남자를 찾아 나섰다.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안성기의 스케치북,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문재인의 바둑판…'

책 안에는 '수집'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열 명의 남자가 등장했다. 책을 구성하는 열 명의 인터뷰이 모두 자신이 지닌 물건에 대한 수다를 줄줄이 읊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글로 읽는 것만으로 나는 배가 불렀었다.

'수집'은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든다. 좋아하는 것에 매달리게 하고,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꼭 손을 쭉 뻗게 하고, 잃으면 안타깝게 하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타인에 의해, 내 마음에 의해 수집을 꽤 여러 번 해왔다. 엄마에 의해 젖병을 수집해왔고, 기저귀를 수집해왔으며 내 마음에 의해 바비 인형을, 스티커를, 블록을, 장난감 미니카를 유행에 따라 바꿔가며 수집해보지 않았던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 때는 스티커를 모았고, 일본에서 나온 사쿠라펜을 색깔별로 모았으며,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맥도날드 해피밀 장난감 세트에 집착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유일하게 딱 한 가지, 책만 모은다. 책을 모으면서부터는 나머지 물건들까지 더불어 모으면 생활비에 지장이 생기니 책만 모으기로 결심한지가 꽤 되었다.

화가들 중에서도 수집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여럿 있다. 폴 고갱은 유년시절을 페루에서 보내서인지 페루식 원시적인 느낌이 가득한 도자기를 모았고, 고흐는 일본의 우끼요에에 매력을 느껴 일본식 털실, 일본에서 넘어온 포장지를 모았다. 그리고 내가 유독 애정하는 화가 조르조 모란디는 평생 그릇을 모으며 그 그릇들을 화폭에 그리는 것이 삶의 숙명인 것처럼 살아갔다. 그리고 여기 죽을 때까지 '상자 수집'에 집착한 한 미국 예술가가 있다.

미국의 조각가인 조셉 코넬(Joseph Cornell/1903-1972)의 집은 늘 빼곡한 상자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모은 상자에 아주 예전부터 모아두었던 다양한 물건들을 멋지게 배치해서 작품을 제작했다.

그림1 A Parrot For Juan Gris 1953



오래된 신문들이 콜라주 되어있고 한 마리의 나무 앵무새가 상자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새 위로 보이는 봉은 이 상자가 '작은 장롱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하고, 아래에 떨어진 둥근 물건은 새의 알이거나 작은 지구로도 보인다.

조셉 코넬은 1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 가정의 생계를 꾸려야했다. 섬유회사의 직원으로 옷감 파는 세일즈맨으로 활동했던 그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길에 맨해튼의 헌책방이나 골동품 가게를 구경하는 일이었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서 모은 돈을 생활비에 보태고 자신을 위해 조금씩 돈을 모아 골동품이나 레코드판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줄리앙 레비 화랑에서 에른스트의 콜라주 소설집〈백두녀(百頭女)〉를 본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 하나에 영감을 얻어 작업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27세의 일이었다.

그림2 막스 에른스트의 꼴라쥬 소설집 -백두녀 La femme 100 tetes-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자



이듬해 조셉 커넬은 같은 화랑에서 열린 '제1회 미국 슈르리얼 리스트전'에 작품을 출품한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영감의 원천을 찾는다. 바로 살바도르 달리의 이란 작품이다. 그는 달리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자'에서 얻은 영감을 계기로 줄곧 '상자' 작업 매달린다. 그리고 자신이 틈틈이 모은 아주 작은 물건들을 서로 모아 콜라주하고, 배치하여 상자 속에 넣고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꾸미기 시작한다. 그가 만든 이런 작은 상자들은 아픈 동생의 장난감이 되기도 했다. 병들어 밖에 나가 활동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그의 상자는 또다 다른 작은 세계였던 것이다.

그가 만든 상자 속 세상들을 들여다본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나고,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들이 부딪히며 낯설음과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현실에서 재료를 얻었지만 다분히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세계대전 전후로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뉴욕으로 건너온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 중에서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특히 많았다. 코넬은 그들과 끈끈한 친분을 가졌고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림3 Tilly Losch 1935



어릴 적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놓고 아끼던 '종이인형'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함께 '종이인형'이 맞는 건지 '인형종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 한참을 망설이던 그 시절에는 100원만 있어도. 여러 명의 종이인형이 내 품에 들어왔다. 비록 종이 한 장이었지만 모든 인형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회색빛 뒷면에 이름을 적었다. 혹시나 찢어지면 투명 테이프로 붙여가며 옷 윗부분은 야무지게 접어 툭 하고 인형에 걸어 리얼하게 인형극을 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추억의 물건이 되었으나 이렇게 커넬의 작품으로 만나니 반갑다.

그림4 Penny Arcade (Portrait of Lauren Bacall), 1945~48, Mixed Media, Private Collection



'로렌 바콜의 초상화'란 작품이다. 미국 출신의 배우 로렌 바콜(Lauren Bacall)은 당대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여성으로 할리우드의 최고의 인기 있는 여성이기도 했다. 그녀의 리즈시절을 그대로 박제해준 듯한 커넬의 작품 속에서 그녀는 영원히 늙지않는다.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데 여념이 없던 코넬은 상자 안 아주 오래된 사진, 지도,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을 배치했다. 깨진 유리조각은 산이 되기도 했고, 코르크 공은 행성으로 변했으며 버려진 금속 조각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코넬의 상자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소년, 소녀시대에 좋아했던 문학들과 꿈과 이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림5 Untitled, date unknown wood, glass, rubber balls and plaster



1950년대 중반 이미 만들어진 물질들을 콜라주 했던 팝아트의 거장 '라우센버그'와 '제스퍼 존스' 역시 조셉 코넬로부터 영향을 받았노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을 만큼 그는 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앗상블라주(조립/Assemblage)이라는 단어는 1953년 장 뒤비페가 피카소와 브라크의 콜라주보다 더 많은 물질들을 입체적으로 부착하는 작품을 칭하여 부른 단어이다. 조셉 코넬 역시 오래되거나 버려진 물건들을 서로 조합하여 붙여 앗상블라주 했다. 훗날 영국의 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는 버려진 물건들을 서로 조합하여 예술품을 창작하는 행위를 정크아트(Junk Art)이라고 불렀다. 에른스트와 입체주의 화가들의 콜라주로부터 연결된 이 튼튼한 실은 앗상블라주로 정크아트로 엮이며 현대에 이르러 활발한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림6 untitled (Canis Major constellation)



마르셀 뒤샹 역시 코넬의 작품을 사랑했다. 언어와 사물을 활용한 비밀스럽고 의미가 중첩되는 작품을 표현하는 코넬의 미학과 뒤샹의 미학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당시 한 평론가는 코넬의 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즐거움을 위한 장난감 상점'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의 순환 속에서 정신없이 헤맬 때 나는 가끔 미지의 세계로 갈 수 있는 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그럴 때 마다 코넬의 상자는 늘 그 자리에서 비밀스러운 꿈을 꾸고 있었다. 내게 코넬의 상자는 언제라도 기꺼이 들어가 보고 싶은 마법의 상자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을 넣으면 꺼낼 수 있고, 다시 다음 원하는 것으로 채워지는 그런 상자 말이다. 숨고 싶은 날엔 상자 속 세상에 들어가 그 곳에서 지내고, 나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나오는 제 3의 공간이 내게는 조셉 코넬의 작품이다.

평범할 수 있는 '수집'이라는 그의 취미는 이토록 재미있는 예술을 탄생시켰다. 수많은 수집가들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는 의외로 많지만 수많은 수집이 예술작품이 된 이야기는 언제들어도 경이롭다. 오늘은 우리 집과 내 마음을 한번 찬찬히 둘러보자, 내가 가장 많이 수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는 것도 좋고, 보이지 않는 것을 수집하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다. 왠지 조셉 코넬 덕분에 나는 오늘 추억을 한가득 수집한 기분이다.

그림7 조셉 코넬의 모습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 한 점, 그림은 위로다. 명화보기 좋은 날, 모지스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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