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위기는 그 나라의 지배층이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굳이 이런저런 사례를 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수많은 역사가 보여줬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군사령부가 제대로 된 상황인식을 하지 못하면 정확한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 그 결과는 비참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 각국과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 때 승승장구했던 우리 주력군은 언제부터인가 쓴 맛을 보기 시작했다. 각종 지표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의 주력군인 수출은 14개월째 줄어들고 있다. 올들어서는 전년대비 감소폭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인데 수출이 급감한다는 것은 분명 적신호다.
내수시장도 좋지 않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전체 산업생산은 전월대비 1.2% 감소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전월 대비 1.1%포인트 하락한 72.6%였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가 힘들었던 2009년 4월(72.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서비스업 생산은 전월대비 0.9% 감소했으며 소매 분야는 전월대비 1.4%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전월대비 6% 감소했다. 거의 모든 지표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상황이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를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인 가계살림도 팍팍해졌다. 모두들 체감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지난해말 기준으로 1200조원을 넘겼다.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후 최대치다.
집에 빚이 늘어나면 당연히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런 탓에 지난해 평균소비성향은 71.9%를 기록했다. 한달에 100만원을 벌었다면 이 가운데 71만9000원만 썼다는 얘기다. 나머지는 세금이나 이자 등에 지출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기업과 가계 경제가 힘들어지면 은행도 같이 힘들어진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부실채권 규모를 조사했더니 28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선과 건설 분야 기업들의 부실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업, 가계, 금융 등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다. 그런데 여의도에서는 이 모든 상황을 외면한 채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 셈법에 빠져 있다. 다들 지금 우리 경제가 위기라는 사실을 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알기만 할 뿐, 실제로 '체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집에 돈이 없어 가족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데 가장은 말로만 "걱정하지 말라"며 딴 생각을 하는 것과 똑같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건 시간문제인 줄도 모른 채….
우여곡절 끝에 숱한 화제를 낳으며 필리버스터가 종료됐다. 필리버스터는 끝났지만 19대 국회가 끝난 건 아니다. 지금부터는 밀려있는 숙제를 해야 한다.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을 비롯한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 등은 2월국회에선 물건너 갔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어느 법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이 법안들의 처리도 시급하다. 이제는 여의도만 쳐다보지 말고 눈을 돌려 집 식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살펴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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