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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박종국의 경제이야기] 정몽구 회장의 럭비경영

대학에서 사회학, 통신공학(석사)을 공부했다. 한국정보통신(주)팀장, 현대그룹 그룹홍보실 부장, 오리온 홍보실 실장 역임.



2013년 러시아의 겨울은 하루 종일 눈이 오다 말다를 되풀이했다. 동료직원과 대형마트를 돌아보고 저녁을 먹으러 택시를 잡아타고 샤슬릭(러시아 꼬치요리)요리로 유명한 그루지아 식당(북한대사관 옆)으로 갔다.

 자신을 세르게이라고 소개한 운전기사의 러시아식 영어는 나를 쫄게 했다. 덩치가 산만한 그는 내게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답하자 그는 내게 현대차의 광고 입간판을 가리키며 "베리굿"이라고 답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일본은 잘사는 나라다. 아시아 국가가 대단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물었다. "중국도 대국이고 자동차도 만들어 수출한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는 피식 웃으며 아무 말을 안했다. 모스크바 주요 거리에는 에쿠스, 그랜저 광고판을 쉽게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정주영 선대회장의 뚝심과 애국심으로 시작된 회사다. 현대자동차는75년 국산최초 모델 포니를 시작으로 엑셀, 소나타 등을 만들어 국내 자동차 1위 기업이 됐다.

 현대차는 가격이 저렴하고 연비가 좋은 차였지만 일본, 유럽, 미국의 자동차 회사와 비교하기에 작은 회사였다. 80~90년대 미국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했지만 품질 문제로 현대차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고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1970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1974년 현대자동차서비스(주)의 센터소장으로 일을 하면서 자동차를 배웠고 품질의 중요성을 몸으로 배웠다.

 당시 서비스 센터는 현대차 성토장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만큼 자동차 품질이 엉성했다.

 정회장은 1977년 현대정공을 세워 갤로퍼를 만들어 쌍용자동차가 독식하던 4륜자동차 시장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뒤이어 1999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국내자동차 시장을 평정했다.

 1999년 아버지 정주영회장은 정몽구회장의 경영능력을 인정해 현대차회장으로 임명했다. 정 회장은 품질경영을 통해 유럽과 미국, 일본기업을 따라잡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세계자동차 시장은 빅3 ,빅5 정도만 살아남을 것으로 봤다. 쉽게 말해 일본 도요타, 독일 벤츠, BMW, 폴크스바겐, 미국 GM Ford 정도만 살아남을 거라고 봤다. 여기에 프랑스 르노자동차 정도가 낄 것으로 봤다. 아무도 현대기아차그룹이 세계 5위의 자동차 메이커가 되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정회장은 외환위기를 막 벗어나려고 하던 때 미국공장을 지었다. 협력업체도 모두 미국에 갔다. 현대차 내부의 반대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말이 돌았었다. 아버지 정주영회장처럼 정몽구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중국공장을 설립할 때도 협력업체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정몽구회장이 뚝심으로 밀어붙여 성공했다.

 정몽구 회장은 "책상 머리엔 아무것도 없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경영철학을 수시로 말한다.

 모스크바와 러시아 대부분 지역은 눈의 나라다. 시내어디를 가나 워셔액을 파는 상인을 흔하게 본다. 현대차는 차량의 워셔액 통을 늘리고 추운지역에서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문제도 해결했다. 또 눈길과 도로사정이 안좋은 상황을 고려해 자동차 설계에 반영했다. 2011년 공장을 열어 러시아 자동차시장 20%의 점유율을 올리고 있다.

 작년 가을 이스라엘에서 무기회사를 운영하는 80대 후반의 회장을 만났다. 그는 "현대차는 이스라엘 자동차 시장의 1위"라고 했다. 자기는 소렌토가 맘에 들어 싼타페를 더 샀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스라엘은 햇볕이 강한데 현대차는 버튼만 누르면 햇볕이 가려진다. 유럽·일본차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고 한다.

 자동차 성능도 훌륭하고 가격도 저렴해 이스라엘에서 국민차로 불린다고 했다. 왜 한국에 왔느냐 그에게 물으니, "이스라엘처럼 작은 나라인 한국이 어떻게 세계적인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웃음을 지었다.

 러시아에는 러시안 타임이 있다. 우리나라의 70~80년대 코리안 타임을 생각하면 된다. 또 인간관계로 비즈니스가 연결돼있다. 또 유럽인이라는 자존심이 대단하다. 이런 곳에서 짧은 기간에 시장의 강자가 되기는 어렵다.

 알다시피 정회장은 경복고 재학시절 럭비부 주장을 했다. 어딘지 모르게 그의 경영은 럭비와 비슷하다. 15명 모두가 스크럼을 짜고 경기를 하는 것처럼 협력업체와 현대차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렇다.

 정몽구 회장은 1999년 수장이 됐을 때 현대차의 자산은 30조원 대였다. 16년 만인 2014년 매출만 165조 6301억원에 자산은 200조원 가까이 키웠다. 정몽구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더불어 선친이 물려준 회사를 세계적으로 키운 재계의 수장이다.

 정몽구 회장은 일에 대해서는 호랑이처럼 무섭지만 소탈하다. 해외를 나가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재원 법인장의 집에 들러 밥을 먹는 아버지 같은 리더다.

 럭비에서 볼은 앞으로 패스할 수 없다. 뒤로만 하게 돼있다. 전진이 없으면 패스도 없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전체가 조직적으로 뛰어 나가 상대를 막고 쓰러 뜨려야 한다. 정몽구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제조업의 간판스타이자 우리의 희망이기도하다. 현대차가 끈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우리 경제에 희망이 생기는 이유도 바로 이런 거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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