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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박종국의 경제이야기] 박용만이 그리는 두산의 미래

박종국 객원논설위원 대학에서 사회학, 통신공학(석사)을 공부했다. 한국정보통신(주)팀장, 현대그룹 그룹홍보실 부장, 오리온 홍보실 실장 역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이 있다.

 진짜로 모든 걸 바꾼 그룹사가 있다. 바로 두산그룹이 그랬다. 1995년까지만 해도 두산그룹은 맥주·콜라·햄버거부터 김치에 이르기까지 자잘한 사업이 주력이었다. 이후 1996년 네슬레, 3M, 1997년 코카콜라·환타, 1998년 두산씨그램(위스키,소주), 2001년 OB맥주, 2009년 KFC, 소주, 종가집김치 등을 모두 팔아 치웠다.

박용만 회장은 대신 두산중공업(2001년 한국중공업 인수), 두산건설(2003년 고려산업개발 인수), 두산인프라코어(2005년 대우종합기계 인수), 2007년 밥캣(현재 두산인프라코어인터내셔널)등을 사들였다. 두산관계자에 따르면 박용성 전 회장의 강력한 지원도 한몫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어제까지 학교 앞에서 제법 큰 마트를 운영하던 사장님이 안산 공단내 공장을 사들여 정밀기계를 만들어 수출을 하게 된 거와 같다. 두산그룹의 변신은 가히 충격이자 혁명이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결정판 면세점 사업권까지 손에 넣으며 드라마는 절정에 올랐다.

전경련 역사(30대 재벌회사 가운데)에서 두산그룹처럼 주력을 몽땅 버리고 새로운 사업으로 탈바꿈한 회사는 없다. 그것도 남들이 다들 하기 싫어하는 정밀기계산업이 대부분이다. 두산의 변화는 박용만 회장이 1995년 그룹기획조정실장을 맡으며 변화의 막이 올랐다.

핀란드의 노키아가 종이펄프를 만들다가 휴대폰을 만들면서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두산의 변화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처럼 빠르고 숨 돌릴 틈이 없다.재계의 위상도 단번에 10위권으로 올랐다. 자잘한 사업만 하던 두산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각도 180도 바뀌게 되었다. 두산의 강점은 어느 누구에게도 쏠리지 않는 가족경영과 지분 구성이다. 서구식 이사회를 가족으로 바꿔 놓은 독특한 기업 지배구조를 만들어 냈다. 두 번째는 경영진의 독선과 아집을 견재할 수 있는 그룹회장 선출방식이다.

두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엔 연강재단과 3세대인 박용근,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박용욱과 지분을 갖고 있는 4세(3세대 경영인의 자녀)들로 채워져 있다. 박두병 2대 회장의 자녀 때부터는 3세 경영인이 돌아가며 그룹의 회장을 맡아 오고 있다.

두산그룹은 2009년 주류 산업부문을 롯데에 매각하며 ㈜두산→두산타워, 오리콤, 두산베어스 두산동아 그리고 두산중공업을 지배하는 구조가 됐다. 특이한건 두산중공업이→ 두산인프라, 두산엔진, 두산건설, 두산에이엠씨를 계열사로 두는 모양새다. 박용만 회장의 두산그룹구조변화에 따른 남겨진 뒷설거지가 산처럼 쌓여 있다. 두산이 기업인수로 덩치를 키웠다면, 이제는 연착륙과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가 두산그룹에 덮쳤다. 소비재 사업을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파도였다. 두산그룹의 대표 격인 두산중공업과 계열사의 매출이 줄기 시작했다. 두산중공업의 자회사들인 두산건설, 엔진, 인프라코어 등의 적자와 부채를 어떻게 해결할지 숙제다. 소비재를 할 때야 맥주·콜라·김치·햄버거를 팔던 뭘 하든 국민경제에 큰 영향이 없었다.

 이제 두산그룹은 4만2600여명의 직원이 있다. 이중 2만1000여명이 해외 채용인력이다. 그룹의 중심인 두산중공업은 해외 수주 비중이 70%가 넘는다. 박용만 회장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각도 국제적이 됐다. 그의 말 한마디가 외국언론에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박 회장은 미국 유학파 재벌3세가 주로 하는 먹고 마시고하는 "폼 나는 사업"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제조업, 그것도 중후장대 기계제조사업의 길을 선택했다. 요즘 젊은 사람 트렌드로 보면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엔 간판기업이 있다. 독일의 지멘스, 벤츠와 미국의 GE, 보잉은 나라의 얼굴이자 기술의 상징이다.

 박용만 회장은 "원천기술을 가진 회사가 있고, 적정한 가격에 나와 있다면 M&A를 통해 경영스피드를 끌어 올려야한다"며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M&A"이라고 했다. 그는 유난히 모험정신과 창조적인 기질이 남다르다. 누구와도 얘기를 걸고 답을 한다. 박용만은 보스톤 유학시절 미국의 힘을 느꼈을 것이고 두산의 100년 역사를 비교해봤을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박용만의 변신이 무엇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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