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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트렌드 읽기] 느림에 대한 상대성 이론

박상진 트렌드 읽기



필자는 한때 '느리게 걷기'라는 카페를 애용했다. 도산공원 정문 앞에 커다란 노천 탁자가 맘에 들었다. 그곳에서 책을 펼치면 거짓말처럼 시간이 느려졌다. 책을 쥔채 그 작은 도산공원 안을 거닐면 주말나들이로 찾았던 아침고요수목원이 부럽지 않았다.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식사 시간만 피하면 한 두 잔의 샴페인이나 와인을 곁들인 수다로 밤공기의 편안함에 빠져들었다. 이 행복은 '느리게 걷기'가 이전을 하면서 너무 쉽게 끝났다.

패션은 영국에서 디자인되고, 밀라노에서 만들어지고, 파리에서 선보이고, 뉴역에서 팔린다. 4대 컬렉션이 런던, 파리, 밀라노, 뉴욕에서 열리는 이유다. 이 도시중 밀라노는 좀 다르다. 도시 자체가 디자인이고, 시민의 삶 자체가 패션이기 때문이다. 유독 밀라노가 패션시티로 손꼽히는 이유는 뭘까. 패션위크를 보내면서 찾은 답은 '느림'이었다. 한국이라면 오분도 안 걸릴 일이 십오분, 이십분을 넘긴다. '명 짧은 놈 숨 넘어갈' 상황이 다반사다.

밀라노 사람들은 일찍 일어난다.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건 아니다. 푸짐한 아침 식사를 마련하지도 않는다. 대신 1년 뒤에 떠날 휴가를 계획한다. 시간, 돈, 열정을 모두 쏟아 붓는다. 사업을 하는 사람의 경우 십 년 이상의 계획을 가졌다. 얼마를 벌겠다 혹은 어떤 회사를 만들겠다가 아니라 한 걸음씩 나갈 시간과 다리가 튼튼해지면 속도를 올려 뛸 시간, 그리고 그 사이에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기 위해 물을 마실 시간을 나열해 놓는다. 그 안에는 너무 섬세해서 가늠조차 안되는 섬세한 고민이 빽빽하다.

느림은 부지런함의 결과일 수도 있다. 마치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너무 빨리 돌아서 느린 것처럼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여유는 무관심을 담보로 하는 게으름과는 다르다. 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자포자기의 기운도 아니다. 확신과 꾸준함, 인내가 가슴 안에서 하나가 될 때 밖으로 드러내지는 자신감인 셈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보고 '여유있다'라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겉으로 티내는 것이 아닌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지런함의 느림이다.

대한민국 학교의 등교시간이 9시로 바뀌었다. 이 물리적 변화에 대한 부모의 생각과 태도가 기대된다. 저마다의 능력과 개성을 마음껏 표출하며 살려면 느림에 대한 상대성 이론, 여유가 필요하다. 몸에 베여야 하고, 일상에서 유지돼야 한다. 청소년이 미래라는 걸 믿는가? 이미 자녀들의 아침 시간을 떼우게 할 계획을 세웠다면 미련을 두지 말고 버리자. 믿음을 더 굳게 하고 느리게 살도록 내버려 두자. 그들은 충분히 창조적으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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