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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규, 삼성 열정락서 "나 자신이 가장 큰 동지"



"힘들다고 피하지 마세요.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서진규(66) 희망연구소 소장이 30일 강원도 인제 하늘내린센터에서 육군 최전방 12사단 을지부대 장병 700여명을 위한 삼성그룹의 토크콘서트 '열정락서-전방부대편'에서 가발공장 여공으로 출발해 미국 하버드대 박사가 된 드라마 같은 인생 얘기를 털어놨다.

서 소장은 1948년 가난한 술 장사꾼의 딸로 태어났다.

"진규는 크면 박사가 되라"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의 말에 '박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등록금을 댈 수가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 후 가발공장에 취직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여공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우연히 미국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단돈 1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1971년 스물세 살 때였다.

서툰 영어로 가정부, 한식당 종업원으로 전전하던 그의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나아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잠시 찾아온 평온은 남편의 폭력으로 다시 깨졌다.

남편을 피해 찾아간 곳이 군대였다. 미 육군에 자원입대한 그는 이를 악물고 노력한 끝에 최우수 훈련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장교로 임관해 소령까지 진급했다.

그때까지도 그는 어릴 적 '박사의 꿈'을 잃지 않았다. 1990년 마흔둘의 나이에 하버드대 석사 과정에 입학해 결국 2006년 박사 학위를 거머쥐었다.

서 소장은 수많은 역경을 마주하면서 "나 자신이 나의 가장 큰 동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울러 "너는 큰 인물이 돼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며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었던 것이 결국 갖은 난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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