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로 스크린에 컴백한 신은경
드라마 매진하면서도 마음은 늘 영화로
비운의 과거 지닌 인물에 깊은 연민
강인한 이미지 벗어날 새로운 도전 기다려
"친정집에 온 것 같아 정말 좋아요. 쉼 없이 영화를 하고 싶었거든요. 마음은 언제나 영화인이니까요."
4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소감을 묻자 신은경(41)은 들뜬 듯 말했다. 크게 뜬 두 눈에서 영화를 향한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때 신은경의 주요 무대는 영화였다. 2001년 흥행작 '조폭 마누라'를 시작으로 액션·코미디·로맨스·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에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지난 2010년 '두 사람'을 끝으로 드라마에 매진해온 그는 '욕망의 불꽃'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등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신은경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배우의 감정을 오롯이 전할 수 있는 영화만의 매력 때문이었다.
신은경이 4년 만의 스크린 컴백작으로 선택한 영화는 18일 개봉한 '설계'(감독 박창진)다. 돈과 욕망이 뒤얽힌 사채업계의 뒷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신은경은 복수를 위해 사채업에 뛰어든 여인 세희를 연기했다.
극중 세희는 과거 사채업자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겨진 비운의 과거를 지닌 인물이다. 성공과 복수를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하는 세희는 "세상에는 나 자신만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강인한 여성이다. 신은경은 처음 대본을 읽고 난 뒤 세희에 많은 연민을 느꼈다.
"단순히 복수를 그린 오락영화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세희의 내밀한 심리로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고 나만 믿고 가야 한다'는 세희의 말이 실제 현실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싶더라고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말 독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는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촬영을 진행했다.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짧은 촬영 기간이었다. 배우로서는 캐릭터의 감정을 타이트하게 가져갈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 실제 룸살롱에서 촬영할 때는 현장에 남아 있는 술 냄새를 느끼면서 영화 속 상황에 빠져드는 묘한 경험을 했다. 캐릭터 표현을 위해 소위 '텐프로'로 불리는 화류계 여성들을 직접 만나는 등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신은경은 '설계'를 "머릿속에 채워진 걸 비우고 싶을 때 보러간다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배우로서는 연기의 새로움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설계'를 기점으로 배우 신은경의 이전과 이후가 나뉠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연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를 의식했어요. 반면 '설계'에서는 오롯이 배역으로만 남아 있는 경험을 했거든요. 이제는 어떤 작품이라도 그 인물이 될 자신감이 생겼어요."
사람들은 신은경을 강하고 센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러나 정작 신은경 본인은 대중들의 반응에 대해 "실제 성격은 정반대"라며 호탕한 웃음을 보였다. "극중 캐릭터나 일할 때의 모습만 보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고 해요. 하지만 실제 제 지인들은 저를 '허당'이라고 하거든요.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센 이미지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배우에게 고정화된 이미지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함에 있어 부담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은경은 이마저도 앞으로 더 많은 도전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생각한다.
그런 긍정적인 태도는 자신의 연기를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신은경은 "주위에서 연기를 잘 한다고 칭찬해주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만 자신의 연기가 지닌 장점이 있다면 "굴곡진 삶을 통해 얻은 경험을 통해 어떤 작품도 다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금도 신은경은 배우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작품 속의 저는 완벽주의자와 같은 특별한 사람이었잖아요. 그런 제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기한다면 그 충격이 엄청날 것 같아요. 저에게서 그런 모습을 끌어내줄 수 있는 감독님이 있다면 그 감독님도 굉장한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