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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보낼 수 없구나



"난 꿈이 있었죠/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나를 지켜봐요/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이젠 세상에 없는 열여덟의 소녀 이보미가 수만 명이 모인 무대 위 영상에서, 열정적인 가창력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있었다. 가수 김장훈이 생과 사를 넘어 보미와 함께 듀엣으로 부른 "거위의 꿈"은, 못다 핀 청춘의 너무 이른 유서였다.

세월호 참사 100일인 지난 7월 24일의 서울시 광장은 슬픔이 도리어 힘이 되는 시간을 태어나게 했다. 같이 운다는 것이 얼마나 예기치 않은 감성을 갖게 하는지를 깨우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픔이란 적당히 마비시켜 진정되는 것도 아니며, 절제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건 비통함의 매듭이 풀릴 때까지 아파하면서 가야하는 길이 될 때, 비로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의 미궁(迷宮)이다.

시인 허은실이 라는 시를 읽자 모두의 가슴에 비가 흐르기 시작했다. "흰 꽃들 피네 이 봄 산천에/교복 안에 빛나던 너의 열여덟 (.....)//무덤가에 휘이 호랑지빠귀 울면/그건 너의 목소리 휘파람소리//잠들지 마 잠들지 마 눈감지 마-/침몰하는 세상 조문하러/흰 꽃들 피네/오월 산천이/수의를 입네" 우린 아직 아이들이에요, 라는 표식인 교복이 이들의 되 돌이킬 수 없는 사망을 확인하게 하는 수의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모두가 모두의 조문객이 되어 한없이 흐느꼈다.

"엄마, 엄마가 그동안 나 때문에 너무 울어서, 나 엄마가 흘리는 눈물 속에 있었어요. 엄마의 눈물 속에 섞여서 엄마 얼굴을 만지고, 엄마의 볼에 내 볼을 부비고, 엄마의 손등에 떨어져 엄마 살갗에 스미곤 했어요. (......) 엄마! 보고 싶은 엄마! 엄마라는 말은 안녕이라는 말이기도 해요. 그래서 안녕이란 말 대신 내 마지막 인사는 엄마에요. 엄마!" 시인 도종환의 글 의 낭독이 끝나자 울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그날 장대비가 쏟아지는 새벽 거리에서, 화백 박재동이 시를 읊듯 입을 연다. "안녕이란 말 쓰지 말자/가는 너희가 안녕 하냐/남은 우리가 안녕 하냐/가는 너희가 떠날 수 있느냐/남은 우리가 보낼 수 있느냐?/그냥 있어라/엄마 아빠 곁에/엄마의 눈물 속에" 보낼 수 없다는 건 사랑한다는 말이다. 사랑에는 "안녕"이라는 마지막 인사가 없다.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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