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밀양 주민들, 왜 수백km '고난의 행군' 해야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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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밀양 주민들, 왜 수백km '고난의 행군' 해야만 했나

최종수정 : 2013-11-13 17:00:50
 현장르포 밀양 주민들, 왜 수백km 고난의 행군 해야만 했나

밀양 주민 박정규(52)·박문일(49)·정태호(37)씨는 지난달 28일 밀양 상동역을 출발해 도보로 2주 만인 11일 서울에 도착했다. 허름한 모텔에서 잠을 청한 이들은 12일 오전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밀양 송전탑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며 시위를 벌였고, 다시 도보로 여의도 국회 앞까지 이동했다. 영하 1도까지 내려간 쌀쌀한 날씨에 국회 앞에 모인 인권단체와 밀양주민 30여명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이들은 수백km가 넘는 험난한 길을 걷고 또 걸어야만 했던 걸까.

◆ "고난의 행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밀양 상동면 금호마을 이장 박정규 씨는 "국토종단 도보순례는 평생 살아온 터전이자 묻힐 곳이라 생각하는 고향 땅에서 765㎸ 송전탑에 의해 내몰리는 밀양 주민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폭력에 지치고 멍든 주민들의 가슴이 더욱 답답한 것은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아무런 명분없이 그저 정부와 한전의 이득 만을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며 "시급성이 없던 공사를 강행해 밀양 주민들을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빠뜨리고 공권력을 낭비하게 한 실무 책임자, 국무총리실, 산업통상자원부, 한전, 경찰청의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의 명분이 떨어진 것은 수도권까지 전력을 공급하려던 계획이 취소됐고, 핵발전소 신고리 3·4호기 부품 교체로 가동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현장르포 밀양 주민들, 왜 수백km 고난의 행군 해야만 했나

전문가들은 밀양에 송전탑을 건설하지 않아도 기존의 송전선으로도 충분히 수도권에 전력을 보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송전탑 공사로 인한 환경 파괴와 강력한 전자파 노출로 암·백혈병 등의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은 주민의 생명과도 직결된다.

밀양 주민들은 "'전자파를 먹고 자란 농산물'이라는 오명이 붙은 밀양의 농산물은 누가 사먹겠는가"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하지만 한전은 이들의 반발을 묵살하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현재 밀양 송전탑 공사는 단장면 범도리 96번과 상동면 옥산리 122번 공사 현장 2곳이 추가돼 송전탑 공사 현장은 14곳으로 늘었다. 공사 현장은 경찰 15개 중대 1200여 명이 배치돼 있다. 한전은 내년 말까지 송전탑 52개를 설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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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밀양' 막아야 한다

국회 앞에 모인 주민들과 인권단체들은 '밀양 송전탑 공사를 멈추고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하라' '핵 발전소 이제그만' 등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국회~서강대교~아현방면~대한문까지 송전탑의 고압전력 765kV를 상징하는 7.65km를 다시 걸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의 행진을 막아서며 40여분 동안 주민과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은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서는 인도를 지나갈 수 없다며 통행로를 가로 막았고, 한 할머니는 도로로 뛰어들며 "왜 우리를 막아서는거냐"고 소리쳐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인권단체 역시 "교통을 막는 것도 아닌데 왜 못가게 하나"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한다" "해산할테니 길을 열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찰에 밀린 밀양 주민들은 피켓과 현수막을 접고 서강대교 방면으로 행진한 뒤 밤 늦게 대한문 앞에서의 생명평화 미사, 촛불문화제를 끝으로 도보순례를 마무리했다.

박정규 씨는 "한전과 갈등을 겪는 사이 평온했던 밀양은 송전탑 공사 찬성과 반대파로 갈려 마을공동체까지 파괴됐다"고 호소했다.

이어 "한전이 자체적으로 내세운 보상은 8억8000만원으로 1가구당 680만원이 돌아간다. 이 마저도 전선이 지나가는 집과 논에 한해서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상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인도길을 막아서는 경찰과 민주당 김광진 의원 왼쪽 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 인도길을 막아서는 경찰과 민주당 김광진 의원(왼쪽)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 국민 66% "밀양 문제 공론화해야"

이날 경실련과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는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해결할 공론화기구가 필요하다는 '2013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이번 조사는 전국의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4~29일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실시됐고, 최대허용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p이다.

조사 결과, 밀양 송전탑과 관련한 갈등에 관심이 있다는 응답(67.9%)이 관심이 없다는 응답(32.1%)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특히 밀양 송전탑 갈등에 대해 응답자의 87.2%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국민이 참여해 정책을 결정하는 공론화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응답(66.3%)이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거나 정책결정이 늦어질 수 있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24.2%)보다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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