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동영상 유통허브 꿈꾼다

실리콘밸리 올해의 벤처 '비키' 호창성 문지원 대표 "'꽃남' 세계 한류도 우리 덕이죠"

최종수정 : 2011-01-25 17:37:24
  
▲ '비키'공동대표 호창성(오른쪽) 문지원 부부 /도정환기자

#기획= 2007년 8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스탠퍼드대 인근 작은 사무실. 하버드대 교육공학 석사과정을 1년 만에 마친 문지원(36)씨는 두 명의 프로그램 엔지니어와 씨름하며 새로 오픈할 인터넷 사이트의 프로토타입(기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글로벌 텅(tongue)’이란 회사까지 만든 터였다. 여럿이 함께 커뮤니티를 이뤄 드라마나 영화 같은 세계 각국의 동영상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자막을 달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서비스의 핵심이었다.

짧은 사회생활 후 뒤늦게 유학을 준비하면서 발목을 잡은 영어가 아이디어를 줬다. “(영어) 시험점수는 어찌어찌 받았는데 입학해선 어쩌나 공포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실제 수업에 들어가서도 죽을 맛이었고. 그래서 나만의 공부법으로 선택한 게 좋아하는 ‘미드(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자막을 달아보는 거였다.”

#창업= 프로토타입이 완성된 2008년 3월, 때마침 스탠퍼드대 MBA 코스를 밟고 있던 남편 호창성(37)씨의 벤처창업클래스에 함께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학생들이 창업 아이템을 발표하면 실리콘밸리 전문가들이 자문하는 방식이었다.

수업에 참가해 두달 정도 지켜보던 한 벤처캐티피털 파트너가 ‘시드 머니’로 25만 달러(2억8000만원)를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이 투자금을 바탕으로 2008년 9월 마침내 베타서비스 비키(www.viki.com)를 오픈했다. 사이트는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방식을 택했다. 애초에 교육용으로 구상한 서비스는 유투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가 대유행을 하면서 각국의 동영상에 자국 자막을 다는 데 주로 이용됐다.

처음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베타서비스에선 별 호응이 없더니 미국인으로 폭을 넓히니 반응이 왔다. 당시 한국엔 위키 방식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자발적 공동작업으로 첫 자막이 만들어지고 소문이 나더니 방문자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자막을 달기 위해, 만들어진 자막으로 동영상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커뮤니티가 커지고 트래픽이 감당이 안되더라. 서버가 다운되고 증설을 하면 다음 주에 다시 다운되는 식이었다.”(호)

#도약= 이용자가 늘면서 유튜브에 공개된 동영상과 연동해 자막을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저작권자와 접촉해 라이센스를 확보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미국 엔터테인먼트 전문방송인 NBC유니버셜에서 부사장으로 해외 콘텐츠 투자사업을 담당했던 라즈믹 호박히미안을 CEO로 영입했다. 이어 2009년 봄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제작사 그룹에이트를 찾았고 송병준 대표는 선뜻 ‘꽃남’ 사용을 계약해줬다.

첫 라이센스 컨텐츠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세계 30개 국의 언어로 번역돼 자막이 만들어졌다. 영어·불어·중국어는 물론 터키어·아랍어·베트남어·러시아어·필리핀 따갈로그어까지 접할 수 있는 글로벌 언어가 총출동됐다. 전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한 편의 한국 드라마를 감상하게 된 셈이다.

여세를 몰아 지난해 같은 제작사의 ‘장난스런 키스’를 올리자 46개 자막으로 번역됐고 월 방문자 수가 400만 명을 돌파했다. 그 사이 회사 이름도 ‘비키’로 바꾸고, 지난해 5월엔 성장 가능성을 감지한 여러 벤처캐피털들이 430만불(48억원)을 투자했다.

#성공= ‘비키’의 성공과 미래 가능성은 지난 21일 미국의 테크놀로지 전문매체인 테크크런치가 매년 최고 벤처 기업을 선정해 상을 주는 ‘크런치 어워드’에서 ‘베스트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면서도 확인됐다. 지난해 페이스북과 구글이 수상했고 올해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 소셜커머스업체 그루폰, 소셜게임업체 징가 같은 IT 샛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국적 글로벌 직원 14명으로 구성된 비키는 지난해 싱가포르에 연구·개발(R&D)센터를 갖추고 미국-한국을 이으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인 ‘훌루’에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에피소드= 부산 출신의 선후배였던 호창성·문지원 이사는 IT 거품이 사그라지던 2000년 한국에서 학생 신분으로 친구들과 벤처기업을 창업해 4년 동안 운영하다 사업을 접었다. 야심 찬 프로젝트가 투자를 받지 못해 개발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실패 경험은 ‘비키’를 키우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두 부부 창업자는 이제 미래를 꿈꾼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동영상 콘텐츠가 유통되는 허브가 되었으면 한다. 미국의 동영상 채널로 ‘훌루’가 있다면 우리는 세계를 위한 ‘훌루’가 비전이다.”(호) “전 세계 좋은 콘텐츠의 언어 장벽을 없애고 100개 국 이상의 언어로 소통하게 해준 ‘비키’의 자막 커뮤니티에 감사한다.”(문)

  • 박태정 기자(p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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